동포문학 우수상 받은 박새미양
2세나 다름없는 여자 아이가 한국말 대화와 글짓기에 능숙하다면?
2008년 100일을 갓 보내고 캐나다로 온 박새미(11·영어명 Sammy)양 사연이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알렉산더뮈어·뉴마켓)인 새미양은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제21회 재외동포문학상’에서 초등 부문 우수상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작품 제목은 ‘34번째 민족대표 스코필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으로 ‘대한민국과 나’를 주제로 적어 의미가 더 깊었다. 딸이 공모전 참여로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커졌다고 엄마 신순호(51)씨는 기뻐했다.
새미양 수상은 이번이 5번째다. 2014년 글짓기 대회 장려상부터 작년에는 2등까지 올랐다.
한글 실력이 늘어난데는 신씨의 체계적인 지도가 큰 역할을 했다. 평범한 엄마일 뿐이라는 신씨지만 한글 교육만큼은 욕심을 부렸다.
새미양의 첫 한글 공부는 ‘한글이 야호(EBS)’였다. ‘유아 한글교육의 최강자’로 통하는 이 교재는 한국 유치원에서도 널리 쓰인다. ‘수학이 야호’, ‘속담이 야호’도 유명하다.
신씨의 지극정성은 남달랐다. EBS가 무료 배포한 그림 교재를 스프링책으로 제본, 50권을 토론토에 가져왔다. 2살때부터 매일 읽어줬다.
1년 정도 지나니 스스로 읽기 시작했다. 한글 학습지로 쓰기 연습을 같이 했다. 한글 그림일기을 매일 쓴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한글로 적게 한 반성문은 아이 글 수준을 확인하는 좋은 자료가 됐다.
신씨는 아이들 한글 배우기에 한국학교를 강력 추천했다.
한글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
새미양은 노스욕 컴머밸리 한국학교에서 한인 친구를 처음 만났다. 한국 문화를 접하며 친구들과 친해졌다.
수업이 있는 토요일에는 새미양이 먼저 졸랐다.
명절 때 만드는 전통음식, 노래자랑 대회 등 새로운 한국문화를 체험한다는 게 신기했다. 친절한 선생님의 가르침도 한 몫 했다. 어버이날 새미양의 깨알같은 편지는 감동이었다.
컴머밸리 한국학교는 문학상 응모자를 많이 배출해 이번에 한글학교 특별상을 받았다.
신씨가 한글 공부에 열정인 이유는 신념 때문이다.
한국 말과 글로 깊이 있게 소통이 돼야 ‘행복한 가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캐나다에 왔으니 영어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저는 한글공부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는 어차피 학교에서 영어만 사용해 늘 수 밖에 없어요. 1세대 부모들은 자녀와 영어로 대화하는게 한계가 있잖아요. 한국말과 글로 깊이 대화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통이 가능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신씨. 영어보다 한글공부를 지적하는 엄마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얼마전 에피소드는 신씨의 믿음을 단단하게 했다.
새미양과 한인 마트에서 한국일보를 보며 대화를 한 신씨.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부러운 듯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놀러온 아이에요?”
“아니요. 여기 사는 아이에요”
“니 할아버지는 좋겠다. 손녀랑 말을 나눌수 있어서. 우리 손주들은 한국말이라곤 ‘왔어’, ‘밥 먹어’, ‘싫어’ 밖에 몰라. 애들하고 말이 통해야지 원” 할아버지가 한숨 쉬며 말했다.
존댓말을 쓰는 새미양을 보며 할아버지는 “커서도 한국말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대화의 불통’은 자녀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청소년기에 정체성 혼란을 많이 겪는 한인 1.5세, 2세들은 더하다.
고민과 방황으로 요동치는 시절. 가족 간의 대화가 가장 필요한 시기다.
대화가 없는 가정에서 자녀는 상처를 받고 자란다. 치유되지 않는 고통은 알코올·도박·마약 등 분노로 표출된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부모가 싸울 때 자녀가 느끼는 두려움은 사형수가 죽음을 기다리는 공포와 비슷하다고 한다.
가정교육의 근본은 ‘가족의 소통과 화목’이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새미양은 요즘 부쩍 한국 역사에 대해 많이 묻는다.
‘34번째 독립운동가 스코필드’에 대한 글을 쓴 이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져서다. 아빠(박정현·54·부동산 중개인)와 엄마에게 한국 역사를 들으면 즐거워한다.
요즘 학교에서 한국어를 묻는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세미양은 자랑했다. K팝 열풍으로 한류에 심취한 비한인 친구들이 많아서다.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커졌다. 얼마전 생일파티로 비한인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블랙핑크 노래가 흘러나와 놀랐다.
새미양에게 장래희망을 물었다.
“너무 많아요. 맨날 바뀌니까 믿지 마세요” 장난섞인 얼굴로 웃는 모습이 귀엽다.
엄마는 새미양이 ‘타인을 배려하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랬다.
엄마 신씨도 돕는 일을 좋아한다. 얼마 전 세미양이 공부한 한국책 120권을 뉴마켓 도서관에 기증했다. 난색을 표하는 매니저를 보며 근처 사는 한인 엄마까지 동원해 설득했다.
지금 뉴마켓 도서관에 가면 새미양 엄마가 기증한 한국책으로 한글을 공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