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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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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초(同心草)'를 아시나요

 

    손 영 호 (칼럼니스트·토론토)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風花日將老)/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佳期猶渺渺)/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不結同心人)/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空結同心草).

  바로 김성태(金聖泰, 1910~2012) 작곡의 우리 가곡 '동심초(同心草)'의 노랫말이다. 이 시의 원전이 중국 쓰촨(四川)성의 성도인 청두(成都)시 중심을 흐르는 금강(錦江) 강변 완화계(浣花溪) 개울가에 세워진 망강루(望江樓) 공원에 있다. 이 망강루는 당나라 때 기생 시인이었던 설도(薛濤, 768~832)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망강루 공원에 있는 설도기념관은 입구에 설도의 조각상과 그녀가 좋아했던 대나무로 장식해 놓았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연분홍과 연보라색 엷은 천들이 드리워져 있고, 아련히 고운 빛깔을 내며 매달려 있는 등에서 애틋했던 설도의 사랑이 느껴진다. 벽에는 설도의 인생이 한 편의 이야기처럼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그녀가 쓴 시들이 그녀가 만들었다는 빛깔 고운 편지지와 함께 전시돼 있다.

Image result for 薛濤紀念館▲ 망강루공원(望江園)에 있는 설도기념관. 오른쪽 문 너머로 설도조각상과 대나무가 보인다.

 

  그녀의 무덤에는 1994년에 ‘당여교서설홍도묘(唐女校書薛洪度墓)’라고 새긴 새 묘비가 세워졌다. 홍도는 그녀의 자(字)이다. 검남절도사로 설도의 문객 시인이었던 단문창(段文昌, 773~835)이 쓴 원래의 묘지명(墓誌銘)은 문화대혁명 때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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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도의 무덤에 1994년에 세워진 ‘당여교서설홍도묘’라고 쓴 새 묘비.

 

  설도는 장안(長安, 지금의 서안西安) 사람인데 당나라 때 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청두에 왔으나 부친이 사망하자 모녀의 생계를 위해 16세에 악기(樂妓)가 되었다. 음률, 시, 서예, 용모가 매우 뛰어난 그녀는, 807~813년간 당시 서천(西川)절도사로 있던 무원형(武元衡, 758~815)이 그녀의 재능을 총애하여 교서(校書, 책의 잘못된 글자를 교정하는 관직)로 임명하여 교서랑이 됨으로서 악적(樂籍)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다.

  그 후 설도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완화계의 우물, 즉 '설도정(薛濤井)'에서 물을 길어 연꽃과 맨드라미 꽃잎을 섞어 손바닥만한 크기의 아름다운 붉은색 종이, 이른바 '설도전(薛濤箋)'을 만들어 거기에 시를 써서 시인들에게 주었다. 이것이 유행을 낳아 촉(蜀) 땅을 찾는 절도사를 비롯한 벼슬아치들과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이곳에서 설도와 교류하였으니, 청두 땅 완화계야말로 당시의 문학 살롱이었다고 하겠다.

  늦나이 42살 때 설도는 그 살롱의 문객(文客) 중 11살 연하의 원진(元, 779~831)과 사랑에 빠진다. 원진은 백거이(白居易, 772~846)와 평생 교유하여 ‘원백(元白)’이라 불릴 정도로 시와 소설에 능한 작가이기도 했던 허난(河南)성 뤄양(洛陽) 출신 관료로, 그가 쓴 '회진기(會眞記)'는 일명 '앵앵전(鶯鶯傳)'으로 더 잘 알려진 중국의 대표적인 연애소설이다. 그 후 원나라 때 왕실보(王實甫, 1260~1336)가 쓴 희곡 '서상기(西廂記)'의 원전이 바로 이 소설이다. 다만 앵앵전은 비극적 결말인 데 반해 서상기는 해피엔딩이라는 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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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망강루공원에 있는 설도정(薛濤井).

  주인공 장생(張生)은 애인 최앵앵(崔鶯鶯)을 두고 과거시험을 보러 장안으로 떠난 뒤 급제하지만, 그녀를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장안의 재상집 딸과 혼인한다. 하지만 장생은 나중에 앵앵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가 먼저 사랑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앵앵이 꼬드긴 것이며 어떤 남자라도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을 거라는 식으로 비겁한 변명을 한다. 앵앵은 "그따위 소리 할 시간 있으면 네 마누라한테나 잘해라"며 매몰차게 대한다. 봉건시대 당시에 여간 당찬 여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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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도전(薛濤箋)은 유행을 낳았다.

  사실 원진은 24살 때 문벌 집안 위하경의 딸 위총과 혼인했는데 결혼 7년 만에 4살 연하인 아내가 병사하여 시름에 차 있을 당시 청두에 감찰어사로 부임해서 설도를 만나 2년 남짓 연인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원진은 기생 신분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임신까지 했던 설도와 맺지 못하고 다른 첩실을 들인다.

  설도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고 장안으로 돌아간 원진이었지만 그가 시로 써서 보낸 편지 '설도에게 보냄(寄贈薛濤)'에는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난다.

  금강의 매끄러움과 아미산의 빼어남이/ 변하여 탁문군과 설도가 되었구나/ 말씨는 앵무새의 혀와 같고/ 문장은 봉황의 깃털같이 화려하네/ 시인들 부끄러워 붓을 멈춘 이 많고/ 공경대부들 꿈속에서라도 그대와 같은 시를 쓰고 싶어하네/ 헤어져 서로 그리운데 아득한 강 저편에는/ 창포 꽃 피고 오색 구름 높겠지.

  [註: 탁문군(卓文君)은 한무제 때 실존인물로 16세에 과부가 되었는데, 어느 날 준수하게 생긴 사마상여(司馬相如)가 거문고를 타며 부르는 ‘봉구황(鳳求凰·수컷인 봉이 암컷인 황을 구한다는 뜻)’이라는 노래에 반해 그날 밤 함께 도주하여 결국 사랑과 경영에 성공한 사천 성도판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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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도기념관 내 원진의 편지 ‘설도에게 보냄(寄贈薛濤)’ 시를 새긴 벽화.

 

  한편 설도는 그때의 사랑을 잃은 처연한 아픔을 '봄날의 기다림’ 즉, ‘춘망사(春望詞)’라는 가슴 저린 4수(首)의 시로 남겼는데, 그녀의 500여 수의 시 작품 가운데 백미(白眉)로 꼽힌다. 바로 그  중 세 번째 수를 '진달래꽃'의 시인 김소월의 평안북도 정주군 오산학교의 스승이었던 안서(岸曙) 김억(金億, 1896~?)이 우리말로 맛깔스럽게 번역한 것이 ‘동심초’로 오늘날 널리 알려진 것이다.

  [註: ‘동심초’의 2절 가사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는 같은 시를 1절과 맛이 다르게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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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강루공원에 세워진 설도상 – 춘망사(春望詞) 등 500여 수의 시를 남겼다.

 

(손 영 호  칼럼니스트·토론토  201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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