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손영호 칼럼

본문시작



[손영호] 브람스와 지네뜨 느뵈

손영호 by  조회 수:164 2019.04.18 16:57

브람스와 지네뜨 느뵈

    손 영 호 (칼럼니스트·토론토)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함께 독일의 '3B'라고 불릴 만큼 위대한 작곡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들었던 브람스 곡은 '자장가'와 '헝가리 무곡' 등 몇 곡이 전부였다.

  그의 음악은 모차르트처럼 변화무쌍하게 매혹하는 천재의 음악이 아니다. 베토벤처럼 듣는 사람을 압도하고 긴장시키는 음악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점잖고, 깊이가 있고, 들을수록 풍부한 화성,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리듬, 브람스 특유의 애수 띤 멜로디가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음악이다. 그만큼 그의 음악에서는 서정성과 대중성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내가 그의 음악에 성큼 다가서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183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브람스가 유명한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을 처음 만난 것은 20세가 되던 1853년 5월의 일이었다. 브람스가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트 레메니(Eduard Remenyi, 1828~1898)와 함께 처음 연주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기회가 온 것이다.

http://news.koreanbar.or.kr/news/photo/201508/13312_3277_3457.jpg

▲ 브람스(오른쪽)와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 (1852년)

 

  그로부터 4개월 후 브람스는 요아힘의 소개장을 들고 뒤셀도르프에 있는 슈만의 집을 찾아가 슈만 부부에게서 그 재능을 인정받게 되는 역사적인 사제(師弟)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다

  브람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브람스와 요아힘의 우정의 나무에 열매 맺은 잘 익은 과일"로 표현됐듯이 고마움의 표시로 요아힘에게 헌정하기 위해 작곡된 것이다. 이 곡의 초연은 1879년 1월1일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연주회에서 거행되었다. 지휘는 브람스 자신, 바이올린 독주는 당연히 요아힘이었다.

  흔히 브람스의 이 곡을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 아니라 '바이올린에 거역하는 협주곡'이라고 하듯이,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당당하고 음향이 중후하여 교향곡처럼 작곡되어 있다는 점과, 독주부가 요아힘의 연주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만큼 손이 작은 연주가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곡으로 간주되는 점 등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2/28/Allgeyer.jpg

▲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

  그런데 기교적으로도 극히 어려운 부분이 많은 데 비해 독주부에 화려함이 없어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고생해서 연주해도 그만큼의 재미가 없는 곡으로 알려지기도 했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프랑스의 요절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지네뜨 느뵈(Ginette Neveu, 1919~1949)가 가장 좋아했고 또 가장 그녀의 천재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곡이었다.

  그녀 특유의 빛나는 광채와 고결한 영혼의 발로, 지극히 높은 격조가 이 곡 전체에 감돈다. 그것은 한마디로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영혼의 눈부신 불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제2악장에서의 저 높은 곳을 향해 젓는 날개짓 같은 순수함, 따뜻하고도 풍성한 음악적 언어의 함축 그리고 조이듯 휘몰아쳐 가는 피날레에서의 긴박감 등, 깊은 감동 없이는 들을 수 없다.


브람스.jpg

▲ 2001년 Dutton에서 출시한 '브람스를 연주하는 지네뜨 느뵈'(Ginette Neveu Plays Brahms) 앨범 표지

 

  이 연주를 듣고 있으면 16세 때인 1935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개최된 제1회 비에냐프스키 국제 콩쿠르(Henryk Wieniawski Violin Competition)에서 러시아 명연주가인26세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1908~1974)를 제치고 1등으로 우승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해준다.

  그녀가 활을 잡는 모양은 모든 바이올린 연주의 권위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어떤 날은 하이페츠(Jascha Heifetz, 1901~1987)처럼 쥐는가 하면, 다른 날은 프란체스카티(Rene-Charles "Zino" Francescatti, 1902~1991)처럼 잡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자크 티보(Jacques Thibaud, 1880~1953) 같은 운궁법(運弓法·활 쓰는 법)을 보이기도 했다. 이 기이한 현상을 관찰한 빈의 한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그녀에게 사람들이 이끌리는 것은 그녀의 실제 연주와 그 비범한 개성 사이에 존재하는 완전한 조화이다. 어떤 특별한 악파에 대한 편향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그녀의 오른손은 비할 바 없는 집중력을 지니고, 그리고 고귀한 감수성의 강한 정신에 이끌려서 톤의 갖가지 기술적인 변화를 지배한다. 그러나 온갖 광채를 내뿜으며 이룩하는 그 톤과 악마적인 피치카토를 튕기기 위해 그녀가 활을 조종하는 그 믿어지지 않는 확실함만이 지네뜨 느뵈의 개성에서 뛰어난 특징이라는 것은 아니다. 창조하고 또 창조한다. 여기에 그녀의 재능이 있는 것이다."

http://www.enjoyaudio.com/zbxe/files/attach/images/335217/697/496/da739d4e1c23b8dfa87a26b1a587761b.jpg

▲ 다양한 운궁법을 구사하는 지네뜨 느뵈(Ginette Neveu).

  그러나 느뵈는 놀라운 성공의 절정에서 갑자기 이 지상에서 사라졌다. 그때 나이 30세였다. 파리에서 뉴욕으로 연주 여행을 떠나는 도중 포르투갈령 아조레스 군도에 추락한 비행기 속에서 귀중한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를 가슴에 꼭 껴안은 채 죽음과 마주쳤다.

  이 비행기 안에는 몬트리얼 발행 신문 '르 카나다(Le Canada)'의 주필이었던 기이 자스민(Guy Jasmin)을 비롯하여 피아노 반주자인 한 살 위의 오빠 쟝(Jean Neveu), 당대 최고의 프랑스 샹송가수 에디뜨 피아프(Edith Piaf, 1915~1963)의 연인이었던 프랑스 권투챔피언 마르셀 세르당(Marcel Cerdan, 1916~1949)도 있었다. 피아프는 그의 자서전 '운명의 수레바퀴(The Wheel of Fortune·1958)'에서 "위대한 지네뜨 느뵈의 연주를 듣기 위해 내가 (프랑스로) 여행을 갔어야 했었는데…"라고 안타깝게 술회했다.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마르그리트 롱(Marguerite Long)과 함께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콩쿠르인 '롱-티보 콩쿠르'를 만든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는 1949년 지네트 느뵈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느뵈와 같은 최후를 맞았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 말이 씨가 된 탓일까. 그로부터 4년 뒤인 1953년 9월1일 티보는 일본으로 연주 여행을 가던 도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그가 애용하던 1720년제 스트라디바리우스도 사고로 부서졌다.


http://www.enjoyaudio.com/zbxe/files/attach/images/335217/697/496/003/neveuginette.jpg

▲ 프랑스 파리 Philippe Landru 공동묘지에 있는 지네뜨 느뵈(Ginette Neveu)와 친오빠 쟝(Jean)의 묘지 

  화려함과 다양한 다이내믹 그리고 프랑스풍의 우아함을 두루 갖춘 탁월한 바이올리니스트인 느뵈는 바이올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거장임에 틀림없다. 다만 너무나도 짧게 살다간 그녀이기에 예술적으로 완벽했던 생애의 종말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진다.

  • 이 글은 6년 전 어느 신문사에 기고한 글을 보완하여 다시 쓴 것이다.

(손 영 호  칼럼니스트·토론토  2019. 4)